한승혁 KT 이적 (보상선수, 불펜, FA)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 것입니다. 한승혁 역시 그런 선수였습니다. 기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잠재력은 인정받았지만 결과는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죠. 그런데 지난 2025시즌, 한화에서 뛴 한승혁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평균자책점 2.25, 71경기 등판이라는 커리어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2026시즌, 강백호의 FA 이적에 따른 보상선수로 KT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만년 유망주에서 핵심 불펜으로
일반적으로 '만년 유망주'는 결국 기대에 못 미친 선수를 뜻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조금 다릅니다. 한승혁을 오랜 시간 지켜본 팬으로서, 그가 기아에 있을 때부터 구위 자체는 늘 좋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를 던지는 우완 파이어볼러였죠. 문제는 제구력과 멘탈 컨트롤이었습니다.
한승혁은 기아 타이거즈에서 프로 데뷔 후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회는 계속 주어졌지만 프로 15년 동안 단 한 번도 평균자책점 3점대를 기록하지 못했죠. 불필요한 볼넷이 쌓이고, 그게 실점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그래서 2024년 한화로 트레이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습니다. 손혁 단장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승혁을 영입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죠.
그런데 한화에서의 한승혁은 달랐습니다. 2025시즌 71경기에 등판해 3승 3패 16홀드 3세이브를 기록했고, 무엇보다 평균자책점 2.25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습니다. 셋업맨(Setup Man)으로서 완벽한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여기서 셋업맨이란 마무리 투수 직전에 등판해 승리를 지키는 불펜 투수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7~8회에 나와서 리드를 그대로 지켜 마무리 투수에게 넘기는 역할이죠.
보상선수 제도와 KT의 선택
한승혁이 KT로 오게 된 건 FA 보상선수 제도 때문입니다. 강백호가 한화 이글스로 FA 이적하면서, KT는 보상선수로 한승혁을 선택했습니다. FA 보상선수 제도란 자유계약선수(FA)를 잃은 팀이 영입한 팀의 로스터에서 일정 조건에 맞는 선수를 받아가는 제도를 말합니다(출처: KBO). 한화는 강백호를 보내는 대신 KT 선수 중 한 명을 보호 명단에서 제외해야 했고, KT는 그 중 한승혁을 지목한 것입니다.
솔직히 이건 KT 입장에서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KT는 마무리 박영현은 훌륭했지만, 그 앞 이닝을 책임질 셋업맨이 늘 불안했습니다. 승리를 지켜낼 믿을 만한 불펜 투수가 절실했던 상황이었죠. 한승혁은 바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최적의 카드였습니다. 더구나 올 시즌 후 FA를 앞두고 있어 동기부여도 확실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KT가 노린 건 이겁니다. 한승혁은 지난 시즌 증명된 선수이고, 한승택이라는 오랜 동료와의 재결합으로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한승혁과 한승택은 기아 시절 함께 뛰었고, 서로의 플레이 스타일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포수와 투수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야구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죠.
2026 스프링캠프에서 보여준 각오
한승혁은 2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흥미로운 인터뷰를 남겼습니다. "스프링캠프에서는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새 팀에 합류한 선수라면 당연히 좋은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을 텐데, 오히려 그 마음을 억누르고 있다니 의외였죠.
하지만 이건 최근 성공한 베테랑 투수들의 공통된 접근법입니다. 스프링캠프는 몸을 만드는 시기이지, 좋은 성적을 내는 시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페이스 조절(Pacing)을 철저히 하면서 정규시즌 개막에 맞춰 최고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전략이죠. 여기서 페이스 조절이란 시즌 전체를 내다보며 체력과 컨디션을 분배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무리하게 캠프에서 구위를 올렸다가 시즌 중반 부상으로 이탈하는 것보다, 천천히 몸을 만들어 시즌 내내 안정적으로 던지는 게 훨씬 낫습니다.
한승혁 본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까지 던지면서 상당히 피곤함을 많이 느꼈다. 한 번 체력적으로 떨어지면 다시 페이스를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지난 시즌 그는 커리어 최다 경기를 소화했고, 그 과정에서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더 잘 먹고 운동을 많이 하려 애썼다고 합니다.
실제로 KT 동료들과의 적응도 빨랐습니다. 한승혁은 "어린 선수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원상현이 나랑 나이 차가 있는데 계속 와서 까불댄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보통이 아니다"라며 팀 분위기를 칭찬했습니다. 33세 베테랑이 새 팀에서 빠르게 녹아든다는 건 그만큼 팀 케미스트리가 좋다는 증거입니다.
롯데전 시범경기, 150km 쾅!
그리고 3월 1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시범경기. 한승혁은 7회말 등판해 단 8개의 공으로 1이닝을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첫 타자 이호준에게 초구부터 시속 150km 직구를 꽂아 넣더니 좌익수 뜬공으로 돌려세웠죠. 신인 이서준에게 좌전 안타 하나 내줬지만, 박재엽을 5-4-3 병살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봤을 때 느낀 건, 한승혁이 정말 힘을 아껴뒀다는 겁니다. 캠프 내내 페이스를 조절한 보람이 있었던 거죠. 구위도 살아있고, 제구도 안정적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강백호가 한화 유니폼을 입고 시범경기 첫 홈런을 친 날이기도 했습니다. 한승혁을 KT로 보낸 대가로 온 강백호가 홈런을 치고, 그 보상선수인 한승혁이 완벽한 피칭을 보여준 날이었죠.
한승혁의 2026시즌 성적은 야구계에서도 큰 관심사입니다. 다음은 그에 대한 주요 평가입니다:
- 지난 시즌 평균자책점 2.25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진짜 한 단계 스텝 업한 건지에 대한 의견이 갈립니다.
- 올 시즌 후 FA를 앞두고 있어 동기부여가 확실하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 한승택 포수와의 재결합이 어떤 시너지를 낼지도 주목되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승혁이 지난 시즌 무언가 해답을 찾았다고 봅니다. 그가 인터뷰에서 "불필요한 볼넷을 주지 않으려 정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강조한 부분이 핵심입니다. 안타는 야수들이 잡아줄 수도 있지만, 볼넷은 온전히 투수 책임이니까요. 이런 마인드 변화가 그를 달라지게 만든 것 같습니다.
한승혁은 "KT에서 정말 내게 많은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걸 많이 느낀다. 나도 올 한해를 후회 없는 시즌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33세, FA를 앞둔 베테랑의 각오가 느껴지는 말입니다. KT 팬들 역시 한승혁이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조금 더 편안하게 경기를 지켜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기대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한화에서 보여준 모습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이번 시즌에 다시 한 번 증명해주길 바랍니다.
--- 참고: https://www.starnewskorea.com/sports/2026/03/14/2026031323134439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