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사사구 문제 (볼넷, 영건, 제구력)
볼넷 11개로 경기를 잃는 팀이 우승 후보라고 불렸다는 게 믿어지십니까? 저도 시즌 전까지는 한화 이글스가 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4월 29일 SSG전을 보고 나서 솔직히 말문이 막혔습니다. 선발 황준서와 두 번째 투수 박준영이 합쳐서 사사구(四死球) 11개를 허용하며 1-6 완패. 경기 내용보다 그 숫자가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볼넷 11개, 숫자가 말해주는 것
사사구(四死球)란 타자가 안타 없이 출루하는 경우를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볼넷(四球)과 몸에 맞는 공(死球)을 합쳐 부르는데, 야구에서 투수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실책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안타는 맞더라도 수비로 막을 여지가 있지만, 볼넷은 그냥 헌납하는 출루이기 때문입니다.
이날 황준서는 1회초를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2회초부터 무너졌습니다. 볼넷, 안타, 스리런 홈런, 그리고 연속 볼넷. 제가 중계를 보면서 "이건 타자가 잘 친 게 아니라 투수 스스로 무너진 거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2사 만루에서 밀어내기 볼넷까지 내준 뒤에야 마운드를 내려갔는데, 그 장면은 정말이지 답답함 그 자체였습니다.
박준영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즉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스트라이크 존은 더 정밀해졌습니다. 존 경계를 노리다 빠지는 볼이 과거보다 더 엄격하게 볼 판정을 받기 때문에, 제구력(制球力)이 흔들리는 투수에게는 더 가혹한 환경이 된 셈입니다. 제구력이란 투수가 원하는 코스에 정확하게 공을 던지는 능력을 말합니다. 박준영은 5회초에도 볼넷을 허용한 뒤 적시타까지 맞았고, 두 선발이 기록한 사사구는 최종 11개로 집계됐습니다.
이쯤 되면 수비하는 야수들 이야기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볼넷이 연속으로 나오면 야수들은 그냥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비 시간은 길어지고,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그게 공격 이닝으로 이어졌을 때 타격 집중력에도 영향을 줍니다. 제 경험상 야구는 리듬 싸움인데, 볼넷이 많은 팀은 그 리듬을 스스로 끊어먹는 꼴입니다. 정말 끊기 어려운 악순환입니다.
- 황준서: 1⅔이닝 6사사구 5실점 — 선발 역할 조기 이탈
- 박준영: 3이닝 5사사구 1실점 — 중간 다리 역할 실패
- 두 투수 합산: 11사사구, 팀 패배의 직접 원인
한화의 시즌 초반 팀 사사구 허용 수치는 리그 하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투수 성적 지표인 BB/9(이닝당 볼넷 허용 수)로 보면 상황이 더 명확해집니다. BB/9란 9이닝을 기준으로 투수가 평균 몇 개의 볼넷을 내주는지 계산한 수치로, 이 값이 높을수록 제구력이 불안정하다는 신호입니다. 리그 평균이 대략 3점대인 점을 감안하면(출처: KBO 공식 기록실), 이날 등판한 두 투수의 수치는 그 몇 배에 달했습니다.
영건들의 분전,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앞선 두 투수가 불을 질러놓은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것이 권민규와 원종혁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5회 2사 만루 위기에서 등판한 권민규는 조형우를 2루수 땅볼로 잡으며 추가 실점을 막았고, 이후 6회, 7회, 8회까지 사사구 없이 3⅓이닝을 소화했습니다. 9회에 올라온 원종혁도 삼자범퇴(三者凡退)로 이닝을 끝냈습니다. 삼자범퇴란 세 명의 타자를 모두 아웃으로 처리해 깔끔하게 이닝을 마감하는 것을 뜻합니다.
2006년생 권민규는 2025년 2차 드래프트 2라운드 12순위 지명자이고, 2005년생 원종혁은 2024년 9라운드 81순위 지명자입니다. 두 선수 모두 프로 경력이 길지 않은 신인에 가까운 투수들입니다. 그런데 팀이 5점 차로 끌려가고, 선발이 무너진 위기 상황에서 사사구 없이 마운드를 지켰다는 게 제 눈에는 작은 성과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원종혁이 이닝을 마치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나왔다고 합니다. 저는 그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는 경기에서도 팬들이 박수를 치게 만든다는 건, 그 투수가 최소한 "제 역할을 했다"는 신뢰를 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팀 입장에서는 불펜 소모를 최소화한 것도 수확입니다. 불펜(Bullpen)이란 선발 투수가 내려간 뒤 등판하는 구원 투수진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이 자원을 아끼는 것이 긴 시즌을 치르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김경문 감독이 이 영건들을 잘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의구심이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 계속 어린 투수를 투입하다 보면 단기 성과와 장기 성장 사이에서 균형을 잃을 수 있습니다. 류현진이 공개적으로 젊은 투수들에게 "자기 공을 믿고 가운데를 향해 던지라"고 조언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현장의 답답함도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구력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저는 솔직히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 몰랐습니다. 지난 오프시즌에 필승조(必勝組) 2명이 팀을 떠났습니다. 필승조란 팀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중요한 순간에 안정적으로 등판하는 핵심 구원 투수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미 "전력 누수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한화 팬들 대부분은 젊은 투수들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렇게 모두가 동시에, 비슷한 방식으로 무너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한 구속이나 구위(球威) 부족이 아닙니다. 구위란 투구의 위력, 즉 공의 회전수, 무브먼트, 속도 등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타자 제압 능력을 뜻합니다. 구위가 받쳐주더라도 제구가 안 되면 그 위력이 전혀 발휘되지 않습니다. 이날 황준서도 공 자체가 느리거나 약한 것이 아니라, 코스를 잡지 못해 스스로 무너진 케이스에 가깝습니다.
제구력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야구 전문 매체와 선수 육성 관련 분석을 보면, 투수의 제구 능력은 단순 반복 훈련만으로 개선되기 어렵고 릴리스 포인트(공을 손에서 놓는 순간의 위치) 교정, 심리적 안정, 경기 경험 축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네이버 스포츠 KBO 야구). 즉 이 문제는 코칭스태프가 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번 시즌 한화에 필요한 것은 단기 성적보다 이 젊은 투수들이 흔들리지 않는 메커니즘을 갖추도록 돕는 환경입니다. 무리하게 위기 상황에 계속 투입하면 오히려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습니다. 권민규와 원종혁이 보여준 이날의 호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 부분이 지금 가장 아쉬운 대목입니다.
30일 경기에는 류현진이 선발로 나섭니다. 팬 입장에서는 에이스가 나서는 경기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올 시즌 한화의 방향은 성적보다 성장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승을 기대했던 제가 조금 바보 같았다는 걸 이제는 인정합니다. 권민규, 원종혁 같은 영건들이 이번 시즌을 거치며 단단해진다면, 그게 지금 한화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수확일 것입니다. 오늘 경기 결과가 어떻든, 이 투수들이 마운드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지금 한화 야구를 보는 가장 현명한 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 참고: https://www.xportsnews.com/article/214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