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불펜 위기 (잭 쿠싱, 마무리 투수, 디아즈 끝내기)
솔직히 저는 요즘 한화 이글스 경기를 직접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도저히 실시간으로 볼 자신이 없거든요. 대신 경기가 끝나고 기사를 찾아보는 게 습관이 됐는데, 5월 3일 삼성전 결과를 확인했을 때 그 짧은 기사가 한 편의 비극처럼 읽혔습니다. 47구를 던진 마무리 투수, 역전 끝내기 홈런, 9위 추락. 세 줄이면 충분한 이야기였습니다.
잭 쿠싱, 당신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잭 쿠싱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기대를 별로 안 했습니다. 오웬 화이트가 부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이탈한 자리를 채우러 온 대체 외국인 선수였으니까요. 대체 외국인이란 기존 계약 선수가 부상 등으로 이탈했을 때 팀이 기존 외국인 쿼터를 유지하면서 새로 영입하는 선수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비교 대상이 생기고, 기대치도 따라오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한화 마운드 사정이 워낙 급격히 나빠지다 보니 선발로 온 쿠싱이 마무리 투수 역할까지 맡게 됐습니다. 마무리 투수(Closer)란 9회 리드 상황에서 등판해 경기를 마무리하는 역할로, 강한 심리적 안정감과 단기 구위(球威)가 생명입니다. 구위란 투수의 공이 가진 힘과 예리함을 뜻하는데, 마무리는 단 몇 개의 공으로 타자를 제압해야 하기 때문에 구위가 무너지는 순간 바로 실점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삼성전에서 쿠싱은 7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3이닝에 걸쳐 47구를 던졌습니다. 이틀 전 등판에서도 14구를 소화한 상태였고, 문동주가 어깨 통증으로 조기 강판되면서 불펜 자원이 바닥난 상황이었습니다. 6대 4로 앞선 9회, 구원 투수를 추가로 투입할 수 없는 한화 벤치는 다시 쿠싱에게 공을 건넸습니다. 결과적으로 르윈 디아즈에게 끝내기 3점 홈런을 맞고 7대 6으로 역전패했지만, 이 결과를 쿠싱 탓으로 돌리는 건 누가 봐도 무리한 판정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경기는 결국 선수 개인의 실수보다 팀 운영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마무리에게 3이닝을 맡기는 건 정말 드문 선택이고, 어쩔 수 없다 해도 결과가 좋을 리 없습니다. 이번 경기가 딱 그랬습니다.
마무리 투수 자리, 앞으로가 더 문제다
그렇다면 쿠싱의 계약이 끝난 뒤 마무리 투수 자리는 어떻게 될까요? 이게 저는 솔직히 지금 결과보다 더 걱정됩니다. 한화 팬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윌켈 에르난데스를 방출하고 쿠싱과 연장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에르난데스가 너무 부진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에르난데스가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 이야기는 잠잠해졌습니다. 문제는 에르난데스가 직전 등판에서 통증을 느끼고 자진 강판됐다는 점입니다. 만약 에르난데스의 부상이 장기화된다면, 구단은 그를 방출하고 쿠싱을 선발 로테이션에 편입시키는 방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쿠싱은 원래 선발 투수로 한국에 왔으니까요.
이렇게 되면 마무리 자리는 또다시 공백이 생깁니다. 현재 한화 불펜의 평균자책점(ERA)은 6.31로 리그 최하위입니다. 평균자책점이란 투수가 9이닝을 던졌다고 가정했을 때 평균적으로 허용하는 자책점 수치로, 낮을수록 좋은 투수입니다. 리그 평균이 4점대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6점대는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지금 한화 불펜의 현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불펜 평균자책점 6.31, 리그 꼴찌
- 선발 에이스 문동주 어깨 통증으로 조기 강판
- 에르난데스 통증 자진 강판, 부상 여부 불투명
- 마무리 쿠싱은 단기 계약으로 이탈 시점 예측 불가
이 네 가지 상황이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게 지금 한화 마운드입니다. 어느 한 곳이 버텨줘야 다른 곳도 버틸 수 있는데, 지금은 연결 고리가 전부 끊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KBO리그 공식 기록에 따르면(출처: KBO 공식 홈페이지) 한화는 현재 12승 18패로 9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10위 키움과는 반 경기 차에 불과합니다. 언제든 최하위로 밀릴 수 있는 간격입니다.
최형우의 신기록, 그리고 한화가 묻어버린 경기
이 경기에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삼성의 최형우가 통산 2,623번째 안타를 기록하며 KBO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단독으로 새로 썼습니다. 통산 최다 안타란 선수 경력 전체에 걸쳐 기록한 안타 수를 뜻하는데, 이전까지는 손아섭이 보유하고 있던 기록이었습니다. 그 쐐기를 박은 안타가 하필 9회 무사 1루 상황에서 터진 중전 안타였고, 그게 끝내기 홈런의 빌미가 됐다는 점에서 한화 팬 입장에서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같은 경기에서 한화 포수 허인서는 데뷔 첫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연타석 홈런이란 연속으로 들어선 타석에서 각각 홈런을 치는 것으로, 포수 포지션에서는 더욱 보기 드문 기록입니다. 전날 홈런까지 포함하면 3연전에서만 세 개의 홈런을 쳤으니, 허인서에게는 개인적으로 최고의 시리즈였을 겁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기사를 읽으면서 이 선수가 앞으로 한화 타선을 이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한화 불펜이 무너지는 경기에서 허인서의 활약이 빛을 발했지만, 결국 승리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마운드 상황이 이렇게 불안한 상태에서는 타선이 아무리 잘해도 승률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스포츠 기록 분석 미디어 스탯티즈에 따르면(출처: 스탯티즈) 불펜 방어율이 리그 하위권인 팀은 시즌 최종 승률도 하위권에 머무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지금 한화는 그 데이터를 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중입니다.
올 시즌 한화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향은 하나라고 봅니다. 당장의 순위 싸움보다는 불펜 재건이라는 큰 그림을 보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순위에 집착하면 선수들만 더 소모될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솔직히 이 시즌이 그냥 소화 과정이 되더라도, 다음 시즌에 제대로 된 불펜이 갖춰진 한화 이글스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1999년 우승 이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동안 팬들은 "이번엔 다르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요. 저도 그 말을 믿고 싶었지만, 9회말 디아즈의 홈런이 날아가는 장면이 기사 사진으로만 봐도 마음 한쪽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날 대구에 김승연 회장이 있었다면, 어떤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났을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한화 팬이라면 이번 시즌 결과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한 경기 한 경기보다 팀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는 쪽이 정신 건강에도 나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 참고: https://www.spocho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123